어릴 적 교회는 놀이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귀한 피아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의 집합소였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교회의 미끄럼틀, 시이소, 그네를 타면서 교회 마당을 밟았습니다. 음악 대학을 가고 싶은 친구들은 교회를 다니며 예배 반주를 하면서 피아노를 맘껏 사용했습니다. 피아노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교회의 피아노 반주를 하며 연습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습니다. 문학의 밤이라고 일 년에 한번 친구를 초청을 하여 연극, 합창, 독창 등 다양한 공연을 보여주는 곳이 교회였습니다. 동네의 문화를 주도해 주던 곳, 바로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회가 시대의 문화를 주도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신세대 운동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출발하면서 지금 한국의 문화는 전 세계가 따라하는 'K-Culture'의 시대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6,7,80년대 교회에서 동네 문화를 주도한 문학의 밤은 명함도 내 놓을 수 없습니다. 유행하는 노래나 가수들의 춤을 교회 찬양에 적용하는 모습을 쉽게 봅니다. 더 이상 교회가 주도할 문화는 없습니다. 세상의 문화의 발전 속도와 컨텐츠는 교회가 앞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문화 컨텐츠에 의존해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은 큰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동일하기 때문에 교회만이 할 수 있는 한 가지에 집중한다면 복음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전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문화의 주도권을 세상에 빼앗겼다고 말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견해를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를 생각해 보면, 복음은 다른 장치를 착용하여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그 자체로 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살린 그 복음이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전 세계 구석구석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복음은 다른 도구를 통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을 통해 모든 일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그 안에 문화, 스포츠,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사도행전 2장 성령받은 공동체는 함께 모여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같이 하며 심지어 재정까지도 공유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성령을 받아 진리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임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았을 때, 그들은 다른 것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다니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 행2:46-47, 새번역
- Day by day continuing with one mind in the temple, and breaking bread from house to house, they were taking their meals together with gladness and sincerity of heart,
- praising God and having favor with all the people. And the Lord was adding to their number day by day those who were being saved.
예배와 교제. 그리고 그들을 본 모든 사람들의 반응은 성령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로부터 '호감'(favor)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을 준비하여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받은 은혜와 사랑이 너무 커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성도의 서로사랑의 교제를 실천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 즉 신자와 비신자 모두(all the people) 이들에게서 큰 호감을 받은 것입니다. 나에게 현재 좋은 일은 없지만 이들을 보면 나도 덩달아 좋아지는 상태가 호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이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 기회로 삼아 주님이 친히 날마다 전도 하시며 구원 받는 사람들을 더하게 하셨습니다. 부흥은 주님이 직접 이루신 주님의 작품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가장 우선 된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기쁨의 예배로 변화된 얼굴 표정과 삶의 행동을 비신자에게 보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비신자에게 노출될 때 그들은 반드시 호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이 진실로 생명의 복음임을 믿는다면 주변 비신자들이 그런 우리를 통해 주님께로 오지 않을까요? 어떤 무대를 준비해서 보여주는 것 보다, 우리 한 사람의 바른 예배를 통해 받은 일상의 은혜가 비신자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받은 은혜를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성도들과 나누며 살아간 것이 복음의 진수를 주변에 보여주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통해 구원의 여정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여정에 우리 모두가 주변 비신자에게 복음의 호감을 줄 수 있는 연기자들이 되어 우리 안의 생명을 전달하는 일상의 사명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 교회를 위해 함께 드리는 기도
1. 교회가 복음을 사랑하고 전하는 것을 부지런히 하게 하옵소서. 행사가 아닌 그 자체의 능력을 믿고 전하는 자나 듣는 자 모두가 얼굴과 삶의 행동이 변화되는 구체적인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게 하옵소서!
2. 직장, 학교,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상의 사역을 성도들이 감당하도록 지혜를 주시고, 고난과 아픔이 있는 전도 대상자에게 다가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여 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성도들의 일터와 환경을 사용하여 주옵소서!
- 작성자 : 김영식 목사(포타미션 대표)


* 사진설명 : 화해의 교회와 화해의 조각상
동서 베를린의 경계였던 거리인 '베르나우어 슈트라세'에 있는 화해의 교회. 그리고 그 앞에 있는 동상.
분단과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교회 안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서로 화해하라는 의미에서 이름이 지어졌다. 이 교회는 동독과 서독의 경계선에 있어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많은 주민들이 예배를 드렸고 1920년대 말 약 2만 명의 신도가 모인 대형교회이다. 지금의 교회는 1985년 1월, 동독 정부에서 이전 교회를 폭파해 버렸고, 독일 통일 이후 2000년 11월 9일 지금과 같이 재건축 한 형태이다.
화해의 조각상은 남녀가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이며 이것은 동독과 서독의 주민이 만나서 통일의 감격을 나누는 것을 표현하였다.
(출처 : 2024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베를린 서및 & 유럽 종교개혁 역사탐방 자료집, 2024)
어릴 적 교회는 놀이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귀한 피아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의 집합소였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교회의 미끄럼틀, 시이소, 그네를 타면서 교회 마당을 밟았습니다. 음악 대학을 가고 싶은 친구들은 교회를 다니며 예배 반주를 하면서 피아노를 맘껏 사용했습니다. 피아노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교회의 피아노 반주를 하며 연습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습니다. 문학의 밤이라고 일 년에 한번 친구를 초청을 하여 연극, 합창, 독창 등 다양한 공연을 보여주는 곳이 교회였습니다. 동네의 문화를 주도해 주던 곳, 바로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회가 시대의 문화를 주도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신세대 운동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출발하면서 지금 한국의 문화는 전 세계가 따라하는 'K-Culture'의 시대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6,7,80년대 교회에서 동네 문화를 주도한 문학의 밤은 명함도 내 놓을 수 없습니다. 유행하는 노래나 가수들의 춤을 교회 찬양에 적용하는 모습을 쉽게 봅니다. 더 이상 교회가 주도할 문화는 없습니다. 세상의 문화의 발전 속도와 컨텐츠는 교회가 앞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문화 컨텐츠에 의존해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은 큰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동일하기 때문에 교회만이 할 수 있는 한 가지에 집중한다면 복음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전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문화의 주도권을 세상에 빼앗겼다고 말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견해를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를 생각해 보면, 복음은 다른 장치를 착용하여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그 자체로 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살린 그 복음이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전 세계 구석구석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복음은 다른 도구를 통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을 통해 모든 일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그 안에 문화, 스포츠,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사도행전 2장 성령받은 공동체는 함께 모여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같이 하며 심지어 재정까지도 공유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성령을 받아 진리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임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았을 때, 그들은 다른 것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다니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 행2:46-47, 새번역
예배와 교제. 그리고 그들을 본 모든 사람들의 반응은 성령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로부터 '호감'(favor)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을 준비하여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받은 은혜와 사랑이 너무 커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성도의 서로사랑의 교제를 실천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 즉 신자와 비신자 모두(all the people) 이들에게서 큰 호감을 받은 것입니다. 나에게 현재 좋은 일은 없지만 이들을 보면 나도 덩달아 좋아지는 상태가 호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이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 기회로 삼아 주님이 친히 날마다 전도 하시며 구원 받는 사람들을 더하게 하셨습니다. 부흥은 주님이 직접 이루신 주님의 작품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가장 우선 된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기쁨의 예배로 변화된 얼굴 표정과 삶의 행동을 비신자에게 보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비신자에게 노출될 때 그들은 반드시 호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이 진실로 생명의 복음임을 믿는다면 주변 비신자들이 그런 우리를 통해 주님께로 오지 않을까요? 어떤 무대를 준비해서 보여주는 것 보다, 우리 한 사람의 바른 예배를 통해 받은 일상의 은혜가 비신자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받은 은혜를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성도들과 나누며 살아간 것이 복음의 진수를 주변에 보여주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통해 구원의 여정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여정에 우리 모두가 주변 비신자에게 복음의 호감을 줄 수 있는 연기자들이 되어 우리 안의 생명을 전달하는 일상의 사명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 교회를 위해 함께 드리는 기도
1. 교회가 복음을 사랑하고 전하는 것을 부지런히 하게 하옵소서. 행사가 아닌 그 자체의 능력을 믿고 전하는 자나 듣는 자 모두가 얼굴과 삶의 행동이 변화되는 구체적인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게 하옵소서!
2. 직장, 학교,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상의 사역을 성도들이 감당하도록 지혜를 주시고, 고난과 아픔이 있는 전도 대상자에게 다가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여 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성도들의 일터와 환경을 사용하여 주옵소서!
- 작성자 : 김영식 목사(포타미션 대표)
* 사진설명 : 화해의 교회와 화해의 조각상
동서 베를린의 경계였던 거리인 '베르나우어 슈트라세'에 있는 화해의 교회. 그리고 그 앞에 있는 동상.
분단과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교회 안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서로 화해하라는 의미에서 이름이 지어졌다. 이 교회는 동독과 서독의 경계선에 있어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많은 주민들이 예배를 드렸고 1920년대 말 약 2만 명의 신도가 모인 대형교회이다. 지금의 교회는 1985년 1월, 동독 정부에서 이전 교회를 폭파해 버렸고, 독일 통일 이후 2000년 11월 9일 지금과 같이 재건축 한 형태이다.
화해의 조각상은 남녀가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이며 이것은 동독과 서독의 주민이 만나서 통일의 감격을 나누는 것을 표현하였다.
(출처 : 2024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베를린 서및 & 유럽 종교개혁 역사탐방 자료집,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