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을 가로막는 벽 앞에서 – 이주 노동자의 존엄과 성숙한 환대를 위하여
“이주 노동자의 삶은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을 책임지며 고난을 묵묵히 견뎌내는 우리의 아버지의 모습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이주 노동자 시신 지게차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비닐에 싸인 채 기계로 옮겨지는 장면은 단순한 직장 내 괴롭힘을 넘어 이주 노동자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또 다른 상징적인 수치가 있습니다. 지난 5년 간 이주 노동자 산재 사망 통계는 연간 평균 101명이며 이는 한국인 산재 사망 통계보다 7배나 높은 수치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이주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주 노동자들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 낯선 땅에서 가족을 책임지며 외로움과 고난을 묵묵히 견뎌내는 모습은 사실상 가족을 위해 묵묵히 매일의 고생을 견뎌내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그들을 ‘우리와 다른 사람들’로 선을 긋고 거리를 두곤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지게차 사건을 두고는 이렇게 말 할 수 있을 겁니다. “저건 너무 심한 거지. 나는 저렇게까지는 하지 않아.”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마음 속에도 여전히 오염된 태도, 곧 보이지 않는 우월감과 차별 의식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와 제도, 그리고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이미 이방인을 대하는 잘못된 태도를 품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합니다.
“너희도 나그네였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너희는 이방 사람을 억압하지 말고 학대하지 말아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살지 않았느냐?”
(출애굽기 22:21, 표준새번역)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때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며, 약속의 언약에 대해서는 외인이었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었으며, 하나님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에베소서 2:12, 표준새번역)
“우리도 이방인이었다.”
성경은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도 영원히 안전할 것만 같은 우리를 둘러싼 한국의 사회 환경은 은퇴, 질병, 경제적 어려움 등 개인적인 이유로 언제든 ‘사회적 이방인화’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은,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우리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작은 자에게 하는 환대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누구에게 환대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주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복음 25:40, 표준새번역)
요즘 뉴스 기사에서 볼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 속에 계신 하나님이 서 계십니다. 그들의 존엄이 무너진 사회는 결코 평화(샬롬)로울 수 없습니다. 제도에서든, 일터에서든, 생활 현장에서든 하나님과의 샬롬과 이주 노동자들을 품은 공동체의 샬롬이 회복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평안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 우리의 다짐
샬롬은 단지 우리의 안위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샬롬은 복지 제도, 사회적 감수성,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인 태도 속에서 실천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도 한때 이방인이었다는 사실,
지금도 언제든 사회적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겸손히 기억하며 이웃을 향한 환대가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는 사실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존중하고 환대하는 사회, 그것이 곧 우리 사회를 위한 평화의 길입니다.
이주 노동자와 관련된 제도
EPS 제도(고용허가제, Employment Permit System) EPS 제도는 한국 정부가 중소기업과 농축산·어업·건설업 등 인력난이 심각한 분야의 인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2004년부터 시행한 외국인 고용 제도입니다. 한국과 협약을 맺은 16개국의 노동자들이 한국어능력시험 등을 거쳐 E-9 비자를 받고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고용기간은 최초 3년, 연장 시 최대 4년 10개월이며, 운영 구조는 한국 정부와 송출국 정부 간 협정에 따라 공적 기관이 관리합니다. 이 제도의 목표는 불법 체류자 발생 억제, 합법적 노동력 공급, 산업계 인력난 해소입니다. 다만 EPS 제도는 사업장 이동의 제약, 열악한 근로·주거 환경, 산업재해 발생률의 과도한 편차 등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
* 복지 영역을 위해 함께 드리는 기도
1.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제도적 공정성과 정의
주님, EPS 제도가 단순한 인력 수급 장치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권익을 보호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샬롬)를 드러내는 제도가 되게 하소서. EPS 제도가 고용주의 이익을 우선하는 구조를 넘어서 이주 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제도가 되게 하여주소서. 특히 사업장 내 불합리한 처우를 받아도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한 불합리한 조항들이 개정되도록 도와주소서.
2. 샬롬 공동체로의 초대
한국 사회와 교회가 이방인을 환대하라는 말씀(히브리서 13:2)을 기억합니다. 이주 노동자들이 고향 가족을 위해 외로움과 고생을 감내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시고, 교회 공동체가 그들의 영적·정서적 가족이 되어줌으로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 작성자 : 윤석원 형제(포타미션 PTC 4기, 더브릿지 사회혁신센터장)

(출처 : 조선일보, 2025.7.31. 기사)
샬롬을 가로막는 벽 앞에서 – 이주 노동자의 존엄과 성숙한 환대를 위하여
“이주 노동자의 삶은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을 책임지며 고난을 묵묵히 견뎌내는 우리의 아버지의 모습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이주 노동자 시신 지게차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비닐에 싸인 채 기계로 옮겨지는 장면은 단순한 직장 내 괴롭힘을 넘어 이주 노동자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또 다른 상징적인 수치가 있습니다. 지난 5년 간 이주 노동자 산재 사망 통계는 연간 평균 101명이며 이는 한국인 산재 사망 통계보다 7배나 높은 수치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이주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주 노동자들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 낯선 땅에서 가족을 책임지며 외로움과 고난을 묵묵히 견뎌내는 모습은 사실상 가족을 위해 묵묵히 매일의 고생을 견뎌내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그들을 ‘우리와 다른 사람들’로 선을 긋고 거리를 두곤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지게차 사건을 두고는 이렇게 말 할 수 있을 겁니다. “저건 너무 심한 거지. 나는 저렇게까지는 하지 않아.”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마음 속에도 여전히 오염된 태도, 곧 보이지 않는 우월감과 차별 의식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와 제도, 그리고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이미 이방인을 대하는 잘못된 태도를 품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합니다.
“너희도 나그네였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너희는 이방 사람을 억압하지 말고 학대하지 말아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살지 않았느냐?”
(출애굽기 22:21, 표준새번역)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때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며, 약속의 언약에 대해서는 외인이었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었으며, 하나님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에베소서 2:12, 표준새번역)
“우리도 이방인이었다.”
성경은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도 영원히 안전할 것만 같은 우리를 둘러싼 한국의 사회 환경은 은퇴, 질병, 경제적 어려움 등 개인적인 이유로 언제든 ‘사회적 이방인화’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은,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우리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작은 자에게 하는 환대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누구에게 환대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주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복음 25:40, 표준새번역)
요즘 뉴스 기사에서 볼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 속에 계신 하나님이 서 계십니다. 그들의 존엄이 무너진 사회는 결코 평화(샬롬)로울 수 없습니다. 제도에서든, 일터에서든, 생활 현장에서든 하나님과의 샬롬과 이주 노동자들을 품은 공동체의 샬롬이 회복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평안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 우리의 다짐
샬롬은 단지 우리의 안위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샬롬은 복지 제도, 사회적 감수성,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인 태도 속에서 실천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도 한때 이방인이었다는 사실,
지금도 언제든 사회적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겸손히 기억하며 이웃을 향한 환대가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는 사실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존중하고 환대하는 사회, 그것이 곧 우리 사회를 위한 평화의 길입니다.
이주 노동자와 관련된 제도
EPS 제도(고용허가제, Employment Permit System)
EPS 제도는 한국 정부가 중소기업과 농축산·어업·건설업 등 인력난이 심각한 분야의 인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2004년부터 시행한 외국인 고용 제도입니다. 한국과 협약을 맺은 16개국의 노동자들이 한국어능력시험 등을 거쳐 E-9 비자를 받고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고용기간은 최초 3년, 연장 시 최대 4년 10개월이며, 운영 구조는 한국 정부와 송출국 정부 간 협정에 따라 공적 기관이 관리합니다.
이 제도의 목표는 불법 체류자 발생 억제, 합법적 노동력 공급, 산업계 인력난 해소입니다. 다만 EPS 제도는 사업장 이동의 제약, 열악한 근로·주거 환경, 산업재해 발생률의 과도한 편차 등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 복지 영역을 위해 함께 드리는 기도
1.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제도적 공정성과 정의
주님, EPS 제도가 단순한 인력 수급 장치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권익을 보호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샬롬)를 드러내는 제도가 되게 하소서. EPS 제도가 고용주의 이익을 우선하는 구조를 넘어서 이주 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제도가 되게 하여주소서. 특히 사업장 내 불합리한 처우를 받아도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한 불합리한 조항들이 개정되도록 도와주소서.
2. 샬롬 공동체로의 초대
한국 사회와 교회가 이방인을 환대하라는 말씀(히브리서 13:2)을 기억합니다. 이주 노동자들이 고향 가족을 위해 외로움과 고생을 감내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시고, 교회 공동체가 그들의 영적·정서적 가족이 되어줌으로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 작성자 : 윤석원 형제(포타미션 PTC 4기, 더브릿지 사회혁신센터장)
(출처 : 조선일보, 2025.7.31. 기사)